1991년 6월 15일에 시행된 인천시 (지방직) 소방직 (9급) 공무원 시험 한국사 출제문제입니다.
【문 1 】 고조선의 8조 법금과 관계 없는 것은 다음 중 어느 것인가?
A.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노비로 삼는다.
B. 불효한 자식은 극형에 처한다.
G. 법금은 고조선 사회상을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M. 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여야 한다.
Z. 살인자는 죽인다.
고조선의 8조 법금(八條法禁):고조선의 사회상을 알려 주는 것으로, 반고(班固)가 저술한 「한서 지리지(漢書地理志)」에 3개 조목의 내용만이 전한다.
1.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以當時償殺).
2.사람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相傷以穀傷).
3.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자속(自贖)하려는 자는 돈 50만을 내야 한다(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4.부인들이 정신(貞信)하여 음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간음을 금지하는 또 하나의 조항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以當時償殺).
2.사람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배상한다(相傷以穀傷).
3.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되, 자속(自贖)하려는 자는 돈 50만을 내야 한다(相盜者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4.부인들이 정신(貞信)하여 음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간음을 금지하는 또 하나의 조항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 2 】 조선 시대에 유통된 화폐로서 가장 오랫동안 통용된 화폐는?
A. 상평통보
B. 조선통보
G. 삼한통보
M. 해동통보
Z. 전폐
A.상평통보:인조 때(1634) 처음 발행되어 유통된 화폐로 조선 말기에 신식 화폐가 주조되기 전까지 가장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B․Z:조선 초기 화폐로 저화(조선 최초의 지폐, 태종 1년, 1401)와 조선통보(세종 5년, 1423) 등이 주조되었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G․M:고려 시대의 화폐로 역시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B․Z:조선 초기 화폐로 저화(조선 최초의 지폐, 태종 1년, 1401)와 조선통보(세종 5년, 1423) 등이 주조되었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G․M:고려 시대의 화폐로 역시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문 3 】 삼국유사를 설명한 것 중 틀린 것은?
A. 불교에 관한 내용이 많다.
B. 기전체로 서술된 사서이다.
G. 설화나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M. 일연이 편찬하였다.
Z. 향가가 수록되어 있다.
B:기전체의 대표적 사서는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삼국유사:충렬왕 때 일연에 의해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설화나 야사를 수록하였으며, 「삼국사기」에 누락된 부분이 많이 수록되었고,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보는 자주 의식을 나타내었다.
※삼국유사:충렬왕 때 일연에 의해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설화나 야사를 수록하였으며, 「삼국사기」에 누락된 부분이 많이 수록되었고,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보는 자주 의식을 나타내었다.
【문 4 】 조선 시대 서원의 역할에 해당하지 않는 사항은?
A. 지방 유림의 집회
B. 향리의 규찰
G. 선현에 대한 봉사(奉祀)
M. 자제의 교육
Z. 성리학의 연구
B.향리의 규찰:유향소(향청)의 기능에 해당한다. 군현의 수령을 보좌하는 고문 기관이었던 유향소는 풍속 교정․향리 규찰․정령 시달․민정 대표 등을 수행하였다.
A․G․M․Z:사림의 세력 기반이었던 서원의 역할에 해당한다.
A․G․M․Z:사림의 세력 기반이었던 서원의 역할에 해당한다.
【문 5 】 연맹 왕국 시대의 사회 상태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서(史書)는?
A. 삼국지 위지동이전
B. 한서지리지
G. 사기조선전
M. 삼국유사
Z. 삼국사기
A.삼국지 위지동이전:3세기말 진(普)나라 진수(陳壽)가 쓴 책으로, 부여․고구려․동옥저․읍루․예․마한․진한․변한․왜인 등의 전(傳)이 있어 이것이 동방 민족에 관한 최고(最古)의 기록으로 동방 고대의 상태를 아는 데 유일한 근본 사료가 된다.
【문 6 】 고려 말기의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A. 목화씨 전래로 의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B. 불교의 폐단을 비판하는 세력이 확대되었다.
G. 성리학이 들어와 학문 방향을 주도하였다.
M. 지방 출신의 새로운 지식층이 등장하였다.
Z. 천태종 중심의 불교 통합 운동이 일어났다.
Z:고려 후기에는 선종 계통의 불교가 후원을 받아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는 조계종이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문 7 】 실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A. 이용 후생의 학문을 주장하였으나 상공업 진흥에는 관심이 없었다.
B. 몰락한 남인 학자들에 의해 발달했기 때문에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였다.
G. 영,정조의 학문 장려와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으로 융성하게 되었다.
M. 이수광으로부터 비롯되어 유형원, 이익에 이어져 발전하였다.
Z. 양난 후의 자아 반성과 서양 문화의 자극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A:18세기 후반에는 국내 상공업의 발달과 청나라 문화의 영향으로 새로운 경향을 보인 실학자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청의 문화와 청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북학파라고도 하고,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 등 물질 문화의 발달에 관심을 쏟아 이용 후생 학파라고도 하였다.
【문 8 】 단군 신화가 민족 신화로 정착된 것은 어느 시대인가?
A. 조선 시대
B. 고려 시대
G. 통일 신라 시대
M. 삼국 시대
Z. 연맹 왕국 시대
A.조선 시대:민간 신앙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국가 신앙으로 흡수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삼신(환인․환웅․단군) 숭배를 국조 숭배로 흡수하여 구월산에 삼성사를 세우고 제사하는 동시에, 평양에 단군 사당을 따로 건립하여 제사지내기도 하였다.
【문 9 】 18세기 우리 나라 그림의 대표적 경향은?
A. 중국 화풍 및 초상화의 유행
B. 화원이 그린 문인화의 유행
G. 씩씩하고 낭만적인 화풍
M. 서양 화풍의 유행
Z. 서민의 애환을 그린 풍속화의 유행
Z:18세기에는 중국 화풍에서 벗어난 산수화가 그려졌으며, 18세기 후반에 서민과 도회지 양반들을 주제로 한 김홍도․신윤복의 풍속화가 유행하였다. 18세기 말 이후에는 서양 화풍이 유행하게 되었고 19세기에는 복고적 화풍이 다시 유행하였다.
【문10】 조선 500년간의 기본 법전이었고 정치적․법제적 완비와 함께 법치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게 해 준 법전은?
A. 대전통편
B. 대전회통
G. 경제육전
M. 조선경국전
Z. 경국대전
Z.경국대전(經國大典):조선 초의 여러 법전을 토대로 명의 「대명회전」을 참고하여 편찬된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세조 때 최항, 노사신 등이 편찬에 착수하여 호전(戶典), 형전(刑典)이 편찬되었고, 예종 1년(1469)에 나머지 이전․예전․병전․공전이 완성되어, 성종 16년(1485)에 교정․반포되었다. 그 뒤에도 경국대전은 영조 때 「속대전」, 정조 때 「대전통편」, 고종 때 「대전회통」으로 수정, 보완되었으나, 기본적인 골격은 바뀌지 않고 계속되었다.
【문11】 다음의 고려 지방 행정 구역 중 수공업에 종사하던 천민 특수 집단은?
A. 향(鄕)
B. 부곡(部曲)
G. 군(郡)
M. 소(所)
Z. 주(州)
M.소(所):고려 시대에는 특수 천민 부락으로 향․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종사했고, 소(所)의 주민은 수공업에 종사하였다. 이 곳은 호장 이하의 향리가 다스렸으며 조선 시대에 행정 구역에서 소멸되었다.
【문12】 대동법 실시에 관한 설명으로 맞지 않는 것은?
A. 대동법 실시 후 국가 재정이 보강되었다.
B. 쌀, 베, 돈을 공물 대신 바쳤으며 공인이 발생하였다.
G. 함경도․평안도는 실시되지 않았다.
M. 이원익의 주장에 의해 선혜청이 설치되어 17세기 초부터 실시되었다.
Z. 이이가 그 시행을 주장, 16세기 말에 실시되었다.
Z:이이는 대공 수미법의 시행을 주장한 적이 있으나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고, 17세기 초에 이원익․한백겸의 주장으로 경기도에 처음 시행되었다.
※대동법의 시행
1.대동법의 내용: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농민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론이 제기되었으며,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동법(大同法)이었다. 대동법이란, 민호(民戶)에 토산물을 부과, 징수하던 공납을 토지의 결 수에 따라 미(米), 포(布), 전(錢)으로 납입하게 하는 제도였다. 정부는 수납한 미, 포, 전으로 공인(貢人)을 통하여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여 쓰게 되었다.
2.시행 과정
①최초의 실시:이이는 「동호문답」에서 대공 수미법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 후 17세기 초(1608)에 이원익․한백겸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경기도에 먼저 수미법(收米法)을 시행하게 되어, 서울에 선혜청(宣惠廳)을 설치하고 종전의 상공(上貢)을 쌀로 받도록 하여, 토지 1결당 대동미(大同米)라는 이름으로 16두씩 징수하고, 이 법을 대동법이라 하였다.
②전국에 확대 실시:인조 때(1623) 조익의 주장으로 강원도에 실시되었고, 17세기 중엽 효종 때 김육의 주장에 따라 충청도(1651)․전라도(1656)에 실시되었다. 이 때는 1결마다 13두의 대동미를 징수하였다. 이어 18세기 초 숙종 때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 실시(1708)되었다. 대동미 세액은 12두로 통일되었고, 산간 지방에서는 쌀 대신 베나 돈으로 내도록 하였다.
③평안도․함경도는 세납 제도에서 잉류(仍留, 수세미의 현지 보관)가 적용되었으므로, 공납의 상공이 없어 대동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④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데 100년이나 소요된 것은 양반 지주들의 반대가 심하여 이들의 이해를 배려하면서 확대, 시행하였기 때문이다.
※대동법의 시행
1.대동법의 내용: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농민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론이 제기되었으며, 그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대동법(大同法)이었다. 대동법이란, 민호(民戶)에 토산물을 부과, 징수하던 공납을 토지의 결 수에 따라 미(米), 포(布), 전(錢)으로 납입하게 하는 제도였다. 정부는 수납한 미, 포, 전으로 공인(貢人)을 통하여 필요한 물자를 구입하여 쓰게 되었다.
2.시행 과정
①최초의 실시:이이는 「동호문답」에서 대공 수미법을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 후 17세기 초(1608)에 이원익․한백겸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경기도에 먼저 수미법(收米法)을 시행하게 되어, 서울에 선혜청(宣惠廳)을 설치하고 종전의 상공(上貢)을 쌀로 받도록 하여, 토지 1결당 대동미(大同米)라는 이름으로 16두씩 징수하고, 이 법을 대동법이라 하였다.
②전국에 확대 실시:인조 때(1623) 조익의 주장으로 강원도에 실시되었고, 17세기 중엽 효종 때 김육의 주장에 따라 충청도(1651)․전라도(1656)에 실시되었다. 이 때는 1결마다 13두의 대동미를 징수하였다. 이어 18세기 초 숙종 때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 실시(1708)되었다. 대동미 세액은 12두로 통일되었고, 산간 지방에서는 쌀 대신 베나 돈으로 내도록 하였다.
③평안도․함경도는 세납 제도에서 잉류(仍留, 수세미의 현지 보관)가 적용되었으므로, 공납의 상공이 없어 대동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④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데 100년이나 소요된 것은 양반 지주들의 반대가 심하여 이들의 이해를 배려하면서 확대, 시행하였기 때문이다.
【문13】 다음에 해당하는 회담은?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키며,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 |
B.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G. 포츠담 선언
M. 카이로 회담
Z. 미․소 공동 위원회
M.카이로 회담:1943년 11월에 미국(루스벨트), 영국(처칠), 중국(장제스)의 3국 수뇌는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키며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고 선언하였다.
【문14】 위화도 회군의 역사적 의의로서 맞지 않는 것은?
A. 이성계 일파의 정권 장악
B. 전통적인 북진 정책의 좌절
G. 최영을 비롯한 구세력의 완전 도태
M. 친명 외교 노선의 확립
Z. 새 왕조 건설의 기틀 마련
위화도 회군의 의의: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 일파는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새 왕조를 개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명과의 관계를 호전시켜 나갔다. 즉, 이로 인해 구세력은 도태되었고 친명파가 승리하였으며, 이성계가 모든 실권을 장악하여 조선 왕조 건설의 정치적․군사적 터전이 마련되었다.
【문15】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 문학의 자랑거리가 아닌 것은?
A. 팔만 대장경
B. 월정사 8각 9층탑
G. 거북선
M. 상감 청자
Z. 금속 활자
G.거북선:조선 태종 때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 최무선은 원(元)의 상인에게 화약의 제조법을 익혀 화통도감의 설치를 건의하고 여기에서 화약과 화포를 만들었다.
【문16】 청동기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잘못된 것은?
A. 족장의 무덤은 거대한 고인돌(지석묘)과 돌무지무덤(적석총)으로 만들었다.
B. 농경 기구는 신석기 시대의 것을 대부분 그대로 사용하였다.
G.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 제작인들이 홍도와 흑도 계통의 문화를 흡수하였다.
M. 말을 탄 부족들이 인근 부족을 정복하여 공납을 받았다.
Z. 조, 피, 수수 등의 재배와 베짜기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Z:신석기 시대에 대한 설명이다. 청동기 시대에 농업은 조, 피, 콩, 보리 등 밭농사 중심이었지만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도 행해졌다.
【문17】 15세기 100년간 조선 왕조 역대 왕국 국가 지도자들이 가장 역점 정책으로 실시한 내용은?
A. 숭유 배불 정책
B. 개국 공신 중심의 정부 조직
G. 사대 교린 정책
M. 국력 배양을 위한 부국 강병책
Z. 북진 정책 추진
M:A․B․G․Z 등은 조선 태조가 중시하였던 기본 정책이었다. 조선 초기부터 15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역대 왕들이 역점을 두었던 것은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 체제 정비를 통한 부국 강병이었다.
【문18】 선초 모내기법을 기술한 농서는?
A. 금양잡록
B. 농사직설
G. 농가집성
M. 과농소초
Z. 사시찬요
B.농사직설:세종 때 정초가 우리 나라 풍토에 맞는 농사 기술과 품종 등의 개발을 위하여 씨앗의 저장법, 토질의 개량법, 모내기법 등 농부들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저술한 농서이다.
A.금양잡록:성종 때 강희맹이 금양 지방에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들은 농경 방법을 기술한 것으로 그 내용이 뛰어나다.
G.농가집성:효종 때 신속이 「농사직설」, 「사시찬요」, 「금양잡록」 등을 종합한 것이다.
M.과농소초:조선 후기 중상적 실학자 박지원의 저서이다.
A.금양잡록:성종 때 강희맹이 금양 지방에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들은 농경 방법을 기술한 것으로 그 내용이 뛰어나다.
G.농가집성:효종 때 신속이 「농사직설」, 「사시찬요」, 「금양잡록」 등을 종합한 것이다.
M.과농소초:조선 후기 중상적 실학자 박지원의 저서이다.
【문19】 풍기 단속과 감찰의 임무를 맡았던 고려 시대의 관청은?
A. 중추원
B. 중방
G. 삼사
M. 어사대
Z. 도병마사
M.어사대:시정의 논의, 풍기의 단속과 감찰을 맡았으며, 중서 문하성의 3품 이하인 낭사와 함께 서경(署經)의 권한이 있었다.
A.중추원:2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왕명의 출납과 군사 기밀 및 왕실 호위를 담당하였다.
B.중방:무신들의 최고 군사 협의 기관으로 무신 정치 때 핵심 기관으로 권한이 확대되었다가 후에는 교정도감으로 인해 권한이 축소되었다.
G.삼사:화폐․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한 기관이다. 조선의 삼사는 사간원․사헌부․홍문관으로 언론과 감찰․간쟁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Z.도병마사:중서 문하성의 고관인 재신과 중추원의 고관인 추신으로 구성되는 합좌 회의 기관이었다.
A.중추원:2성과 대등한 위치에서 왕명의 출납과 군사 기밀 및 왕실 호위를 담당하였다.
B.중방:무신들의 최고 군사 협의 기관으로 무신 정치 때 핵심 기관으로 권한이 확대되었다가 후에는 교정도감으로 인해 권한이 축소되었다.
G.삼사:화폐․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한 기관이다. 조선의 삼사는 사간원․사헌부․홍문관으로 언론과 감찰․간쟁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Z.도병마사:중서 문하성의 고관인 재신과 중추원의 고관인 추신으로 구성되는 합좌 회의 기관이었다.
【문20】 고려 시대에 우리 나라를 가장 괴롭힌 이민족은?
A. 한족
B. 여진족
G. 거란족
M. 티베트 족
Z. 몽고족
Z.몽고족:1225년에 고려와 국교가 단절된 이후에 몽고는 1231년부터 1254년까지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으며, 1270년에 몽고와 강화하게 되면서 고려는 몽고에 예속되어 내정 간섭과 자주성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댓글 쓰기